[과거의 역사] 6월 18일 국내 역사적 사건 & 이슈
설명
6월 18일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민주화 운동과 행정제도 개편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날입니다. 특히 1987년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와 1895년 조선의 8도제 폐지 등은 각각 6월 민주항쟁의 절정과 근대적 행정제도 개편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날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이 집약된 의미 깊은 날로, 특히 6월 민주항쟁에서 전국 150만 명이 참여한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목차
- 6월 18일의 역사적 의미
- 주요 역사적 사건들
- 시간 순 흐름으로 보는 6월 18일
- 역사 속 인물 조명
- 현대적 의미와 교훈
- 참고 도서
- 결론
- 자주 묻는 질문(FAQ)
6월 18일의 역사적 의미
6월 18일은 한국사에서 민주화 운동과 행정제도 개편의 중요한 전환점들이 발생한 날입니다. 1987년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는 6월 민주항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전국 16개 도시 247개소에서 150만 명이 참여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1895년 조선의 8도제 폐지는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근대적 행정제도 개편으로, 전통적인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도입한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이는 조선이 근대 국가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주요 역사적 사건들
1987년 6월 18일 - 최루탄추방대회
1987년 6월 18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결정에 따라 '최루탄추방대회'가 전국 16개 도시 247개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아 중태에 빠지면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최루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날 시위는 전국 150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으며, 특히 부산에서는 3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밤 시위가 벌어져 6월 민주항쟁의 대세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부산은 6월 항쟁의 분화구 역할을 했으며, 16일부터 시작된 가톨릭센터 농성과 철야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 1987년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 모습 (전국 16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150만 명 규모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 6월 민주항쟁의 절정)
1895년 6월 18일 - 조선 8도제 폐지
1895년 6월 18일, 조선 정부는 칙령 제97호로 전통적인 8도제를 폐지하고, 칙령 제98호로 23부제를 도입하는 대대적인 지방제도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근대적 행정제도 개편이었습니다.
8도제는 조선 초기부터 500년간 유지되어 온 전통적인 행정구역 체계였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보다 효율적인 행정 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3부제로 개편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이 전근대적 체제에서 근대 국가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953년 6월 18일 - 이승만의 반공포로석방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 없는 정전"에 반대하며 반공포로석방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6.25 전쟁 정전협정을 앞두고 이승만이 북한 포로들을 일방적으로 석방한 사건으로, 정전협정 체결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은 이승만의 반공 이념과 통일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국제 정치에서 한국의 입장을 강력히 표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시간 순 흐름으로 보는 6월 18일
타임라인: 6월 18일 관련 주요 역사적 사건들
- 618년: 이연이 당나라 건국 → 동아시아 역사의 전환점
- 1815년: 나폴레옹 워털루 전투 패배 → 유럽 정치 지형 변화
- 1895년: 조선 8도제 폐지, 23부제 도입 → 근대적 행정제도 개편
- 1953년: 이승만 반공포로석방 → 6.25 전쟁 정전협정 파장
- 1987년: 최루탄추방대회 → 6월 민주항쟁 절정, 전국 150만 명 참여
- 1987년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 → 130만 명 참여로 이어짐
- 1987년 6월 29일: 6.29 민주화선언 → 직선제 개헌 수용
이러한 시간적 흐름을 통해 볼 때, 6월 18일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정치적 변혁과 제도 개편의 중요한 변화가 집약된 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 속 인물 조명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지도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는 1987년 5월 27일 결성된 범야권 연대기구로,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를 주도했습니다. 국본은 지역대표 352명, 종교계 대표 683명, 정치인 213명, 각계 대표 943명 등 총 2,191명을 대표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본은 4.13 호헌조치가 건국정신과 민주화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무효라고 선언했으며, 각종 악법의 민주적 개정과 무효화를 위한 범국민적 운동을 벌일 것을 결의했습니다.
이한열과 최루탄 문제
이한열은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진 학생으로,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루탄 문제는 시위가 있을 때마다 제기되었지만, 이한열의 피격 사건으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이한열의 사건은 6월 민주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그는 7월 5일 사망하여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 1987년 6월 18일 부산 서면 로타리 시위 모습 (3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부산 지역 최대 규모 시위, 6월 항쟁의 분화구 역할)
현대적 의미와 교훈
시민 참여 민주주의의 완성
1987년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전국 150만 명이 참여한 이 시위는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졌으며[1][4], 이는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시민 참여 민주주의의 모범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행정제도 개편의 중요성
1895년 8도제 폐지는 시대 변화에 따른 행정제도 개편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500년간 유지된 전통적 체제를 과감히 개편한 이 사건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행정구역 개편 논의에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평화적 저항의 힘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는 비폭력 평화시위를 통해 독재정권을 굴복시킨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이 시위는 결국 6월 29일 6.29 민주화선언을 이끌어내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실현시켰습니다.
▲ 1895년 조선 8도제 폐지 칙령 반포 모습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전통적 행정제도를 근대적 체제로 개편하는 역사적 순간)
참고 도서
- 『6월 항쟁과 한국 민주주의』 - 정해구 저, 민음사
- 『1987년 6월 항쟁 연구』 - 한국정치학회 편, 나남
- 『갑오개혁 연구』 - 한국사연구회 편
- 『한국 현대정치사』 - 서중석 저, 역사비평사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자료집』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고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6월항쟁
- 우리역사넷: 1987년 6월 항쟁
- 서울대학교: 6월항쟁 35주기
결론
6월 18일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민주화 운동과 행정제도 개편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날입니다. 1987년 최루탄추방대회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과 1895년 8도제 폐지를 통한 근대적 행정제도 도입은 모두 대한민국 발전사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6월 18일의 역사적 의미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와 미래에도 계승되어야 할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시민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 시대 변화에 따른 제도 개선, 그리고 평화적 저항을 통한 사회 변화는 모두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소중한 자산입니다.
앞으로도 6월 18일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시민 참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역사적 교훈의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Q1: 1987년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는 어떤 규모였나요?
A: 1987년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는 전국 16개 도시 247개소에서 약 15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였습니다. 특히 부산에서는 3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6월 민주항쟁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Q2: 최루탄추방대회가 열린 배경은 무엇인가요?
A: 최루탄추방대회는 6월 9일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지면서 최루탄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 직접적 계기였습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산발적 시위투쟁을 다시 결집하기 위해 기획했습니다.
Q3: 1895년 조선 8도제 폐지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A: 1895년 6월 18일 조선의 8도제 폐지는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근대적 행정제도 개편이었습니다. 500년간 유지된 전통적인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도입하여 조선이 근대 국가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Q4: 6월 18일 시위가 6월 민주항쟁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A: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는 6월 민주항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전국적으로 민주화 열기를 확산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130만 명 참여)으로 이어져 결국 6월 29일 6.29 민주화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Q5: 현재 6월 18일은 어떻게 기념되고 있나요?
A: 6월 18일 자체는 공식적인 기념일은 아니지만, 6월 민주항쟁의 중요한 시기로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에서 관련 교육과 기념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에서는 매년 6월항쟁 35주기 등을 맞아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